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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관련종합

찬성장(장고) 2016. 2. 21. 08:15
정월 대보름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도교적인 명칭으로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한다. 여기에 중원인 7월 15일, 하원인 10월 15일을 합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원소절(元宵節), 원석(元夕)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 

 

 

대보름날의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한데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것은 정초와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들은 상호 유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월중에 많은 세시행사가 모여 있다. 정월에 드는 설과 대보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설날이 개인적 ·폐쇄적 ·수직적이고, 피붙이의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 ·적극적인 마을공동체 명절로 두 관념이 교차하며 달의 생성과 소멸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한국의 명절 중 정월 대보름의 예축의례와 상대적인 명절로 수확의례인 8월 한가위의 보름 역시 만월을 통한 풍요관념을 보여준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 ·여성 ·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龍蛇) 신앙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洞祭)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전하는 말에는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준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다. 

 

 

 

풍속 및 민속놀이
 
동제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 동신제라고도 한다. 동제를 지내는 목적은 온 마을 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 농사가 잘 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어서, 건강과 풍요로 집약될 수 있다. 동제의 역사는 문헌기록을 통하여 《삼국지》나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에 전하는 삼한(三韓)의 제천행사에까지 소급할 수 있다. 이 제천행사는 봄에 씨를 뿌릴 때 하늘에 제사하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서 하늘에 감사하는 국중대회(國中大會)로서, 연일 음주 · 가무(歌舞)를 한 것 등으로 보아 오늘날의 규모가 큰 동제와 비교될 수 있다. 동제의 종류는 제의 시기에 기준을 두면 춘제(春祭)와 추제(秋祭)로 구분되고, 제를 지내는 목적에 기준을 두면 기풍제(祈豊祭) · 풍어제(豊漁祭), 천연두가 들어오지 않게 하여 달라고 빌던 별신(또는 별신굿),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서 하던 호환굿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또한 동제 대상신의 성격에 따라 산신제 · 서낭제 · 용신제 · 천신제 · 부군제 등이 병행될 수도 있다. 동제는 대체로 정월 14일 밤에 지내는데, 동제 7∼15일 전에 마을 사람들이 제관을 선출하고, 제관들은 동제를 올리는 날까지 금기(禁忌)하며 지낸다. 동젯날은 제물을 신당에 차리고 자정이 되면 초헌(初獻) · 아헌(亞獻) · 종헌(終獻)을 한 후 독축(讀祝)하여 소지(燒紙)를 올리고 끝낸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제주집에 모여 회식하며 마을일을 의논한다. 
개보름쇠기
음력 정월 대보름날[上元]에 개를 굶기는 풍속. 이 날 개에게 음식을 주면 1년 내내 파리가 많이 꾀고 개가 쇠약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 풍속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하루 종일 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오후쯤에 먹이를 준다. 이 풍습에서 잘 먹어야 할 명절에 오히려 굶주린 사람을 상원견(上元犬)에 비유하여 “개 보름 쇠듯한다”고 하는 속담이 생겼다. 
기풍
농업을 천하의 대본으로 삼아 온 한국에서는 풍년을 비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는데, 특히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상원(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헌 수수비를 가져다 밭에 거꾸로 꽂아 놓은 후 절굿공이나 떡메를 가지고 가서 밭 네 귀를 찧고 다닌다. 이것은 밭에 있는 병충을 없애고 여름에 비가 와도 밭두렁이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또 이때에 오줌동이를 지고 가서 밭에 뿌리면서 "두더지 잡자, 굼벙이 잡자"고 외치고, 밥을 가져다 밭 네 귀에 놓아 두면 병충이 없어지고 농작물도 잘 자란다고 전한다. 상원날에 차례를 지낸 다음 콩 · 팥 · 조 · 수수 · 녹두 · 목화씨 등 밭작물을 가지고 가서 밭 귀퉁이에 묻는데, 그렇게 하면 묻은 곡식이 잘 자라서 풍년이 든다고 한다. 또 풍흉을 점치는 방법도 있다. 정월 대보름 달맞이 때 떠오르는 달의 빛 · 모양 · 높이 · 윤곽 등으로 그 조짐을 안다고 하는데, 농촌에서는 오늘날도 하고 있다. 음력 정월에 벌이는 쥐불놀이도 기풍행사인데, 이것은 잡귀를 쫓고 신성하게 봄을 맞이한다는 뜻도 있으나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을 죽여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 
백가반
음력 정월 보름날에 어린아이나 병이 들어 마른 사람이 여러 집[百家]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다가 먹는 풍습. 
절구통을 뉘고 그 위에 개와 마주 걸터앉아 빌어온 밥을 개에게 한 숟갈, 자기가 한 숟갈 하는 식으로 떠먹으면 건강해지고, 다시는 앓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실려 있는 습속이다. 백가반은 귀하게 자라는 아이를 천하게 길러야 건강하게 크며, 앓고 난 사람도 천하게 먹어야 빨리 회복하여 건강해진다는 바람에서 나온 듯하다. 
달맞이 
음력 정월 보름날 땅거미 질 무렵 횃불을 켜들고 산이나 들로 나가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거나 농사일을 점치는 풍속. 한자어로는 영월(迎月)·망월(望月)이라고 한다. 대보름날은 달이 솟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는 것을 길한 것으로 여겨 서로 앞을 다투어 산에 올라간다.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보름달이 솟을 때 횃불을 땅에 꽂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제각기 기원한다. 그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한 대보름날 보름달을 보고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희면 비가 많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달이 남쪽으로 치우치면 해변에 풍년이 들 징조이고, 북쪽으로 치우치면 산촌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집태우기 
정월 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지르며 노는 민속놀이. 달맞이·쥐불놀이·횃불싸움 등과 같이 보름달을 맞이하여 벌이는 놀이로, 주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의 놀이로 전해진다. 달집의 형태는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일반적으로 막대기 3개를 알맞은 간격으로 세워 그 꼭대기가 한 점에 모이도록 묶은 뒤, 한 면만 터놓고 다른 면은 이엉으로 감싼다. 터놓은 쪽은 달이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게 하고 그 가운데에 새끼줄로 달 모양을 만들어 매단다. 불이 붙은 후 오래 타도록 소나무가지를 달집 속에 채우거나 물로 적시기도 한다. 달이 떠오르는 것을 맨 처음보는 사람이 달집에 불을 당기고 불꽃이 피어오르면 신나게 풍물을 울리며 한바탕 뛰논다. 또한 달집을 태우며 달에 절을 하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고 1년간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달집이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도중에 꺼지거나 제대로 타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달집이 다 타서 넘어질 때, 그 방향에 따라 그 해의 풍·흉년을 점치기도 하며, 이웃마을보다 자기네의 불꽃이 더 높이 타오르면 마을에 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쥐불놀이 
음력 정월 첫 쥐날[上子日(상자일)] 밤에 농가에서 행하는 풍속의 하나. 이날 해가 지면 마을마다 들로 나가 논둑·밭둑의 마른 풀에 일제히 불을 놓아태운다. 불은 사방으로 번져 장관을 이루는데, 이 놀이를 하면 1년 동안 무병(無病)하고 액(厄)을 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 및 쥐를 없애 풍작을 기원하고, 한편으로는 그 태운 재가 거름이 되도록 하는 의미도 있다. 또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해의 풍흉(豊凶),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불의 기세가 크면 좋다는 풍습이 있어, 각 마을이 서로 다투어 불기세를 크게 한다. 자정이 되면 자기 마을로 돌아가는데, 들에 놓은 불은 끄지 않고 그대로 둔다.

 

 

더위팔기 
정월 대보름날 풍속의 하나. 한자로는 매서(賣暑)라 한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이웃 친구를 찾아가서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불린 친구가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 가라> 또는 <네 더위 내 더위 먼데 더위>라고 말하여 더위를 판다. 이렇게 하면 더위를 판 사람은 그해 1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으나, 더위를 산 사람은 판 사람의 더위까지 두 사람 몫의 더위를 먹게 된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바로 대답을 하지 않으며, 때로는 미리 <내 더위 사 가라>고 응수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입춘(立春)날 아침에 더위팔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에 행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급히 부른다.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 가라고 한다. 이것을 매서라 한다. 이렇게 하여 더위를 팔면 그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리밟기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는 민속놀이. 답교(踏橋)라고도 한다. 이 날 다리를 밟으면 1년 동안 다리병을 앓지 않고, 12다리를 밟아 지나가면 12달의 액(厄)을 면한다고 한다. 조선 선조(宣祖) 때 이수광의 저서 《지봉유설(芝峰類設)》을 보면, 정월 대보름날 다리를 밟는 풍속은 고려 때 시작된 것으로 남녀가 쌍쌍이 짝을 지어 밤새도록 다녔으므로 거리가 혼잡하여, 이 날 여자가 다리밟는 것을 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여자들은 16일밤에 다리밟기를 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고려 때 다리밟기가 크게 성행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일부 양반들은 번잡을 싫어하여 14일 밤에 했는데, 이것을 <양반다리밟기>라고 했다. 그러나 조선 중엽 이후 차츰 부녀자들이 다리밟기를 하면서 여러 병폐가 생김에 따라 부녀자들의 다리밟기는 점점 줄기 시작했다. 한편 육계굉의 《북경세시기(北京歲時記)》와 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 의하면 중국에도 <주교(走橋)> <주백병(走百病;모든 병을 달아나게 한다는 뜻)>이라 하여 이날 밤 이러한 풍속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로써 다리밟기는 한국에만 있는 풍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리밟기의 기원에 대하여 유득공(柳得恭)은 그의 저서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중국의 여러 서적을 인용하여 <생각컨대 《북경세시기》에 정월대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모두 집에서 나와 다리를 거닐었다>고 하였다. 또한 《제경경물략》에는 <정월 대보름날 부녀자들이 서로 이끌고 밤에 나와 다님으로써 질병을 없애는 것을 주백병이라 한다>고 했다. 또 심방(沈榜)의 《완서잡기(宛署雜記)》에는 16일 밤 부녀자들이 떼를 지어 보통 다리 부근에서 노는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도액(度厄;액막이)이라고 한다고 하여 이것이 한국 풍속의 근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유사한 민속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중국의 주백병에서 온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신밟기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보름까지 행하는 민속놀이. 지신을 진압하여 마을과 가정에 안강과 다복이 깃들기를 비는 벽사진경의 마을행사이다. 지방에 따라 <마당밟기> 또는 <매귀(埋鬼)놀이>라고도 부르며, 놀이의 절차와 등장인물, 복색 등에 차이가 있다. 꽹과리·징·북·장구·쇠납 등의 민속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선두로 하고 소고패·양반·하동(河童)·포수·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당산굿을 비롯하여 집집마다의 지신을 밟으면서 지신풀이가사를 창하며 춤과 익살, 재주를 연희한다. 놀이의 선두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쓴 기를 앞세우고 그 뒤를 농악대와 가장행렬이 따른다. 
용알뜨기 
정월의 첫 진일(辰日)에 첫 닭이 울 때를 기다렸다가 정화수를 길어오던 풍속. 용날 전날 밤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우물 속에 알을 낳는데, 그 알을 낳은 우물물을 먼저 길어다 밥을 지어먹으면 그해는 운수대통하며 풍년이 든다고 믿어 용날 새벽 부인들이 남보다 먼저 우물물을 길으려고 앞을 다투었다. 이를 노룡란(撈龍卵;용의 알을 건진다)이라고 하는데, 물을 먼저 길어 간 사람은 우물에 짚을 띄워 먼저 길어갔음을 표시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황해도와 평안도지방에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월 보름날이나 설날 아침에도 하였으며, 이것은 정화수를 귀히 여기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윷놀이
황해도 지방에서 산패와 들패로 나누어 윷놀이를 하는데 산패가 이기면 밭농사가, 들패가 이기면 논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한다 
볏가릿대 세우기
보름날 새벽 일찍이 집안 아이들로 하여금 전날 만들어 두었던 볏가릿대주위를 돌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를 해가 뜰 때까지 부르게 한다. 
줄다리기
달맞이가 끝나면 윗마을, 아랫마을로 편을 나눠 줄다리기를 하는데 이긴 마을에 풍년이 든다 하였으며 남자와 여자들이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는데 여인네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남정네들은 슬그머니 져주기도 하였다 
고싸움
굵은 줄에 단 고를 어깨에 매고 서로 부딪쳐 이편 고로 상대편 고를 눌러 땅에 닿게 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차전놀이
동채싸움이라고도 하며 안동에서 마을 주민들이 동서로 나뉘어 동채 위에서 지휘하는 대장의 지휘에 따라 전진, 후퇴, 좌우를 반복하다가 상대방의 동채를 눌러 땅에 닿게 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돌싸움
석전이라고도 하며, 마을대 마을 또는 한 지방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하천을 사이에 두거나 백여 보 거리를 두고 서로 돌을 던져 싸우는 것. 
나무쇠싸움 
동, 서로 나누어 나무로 만든 소를 어깨에 메고 상대편을 향해 돌진하여 상대편의 소가 아래쪽으로 처지거나 밀어내지게 되는 편이 이긴다. 이 때 서쪽이 여성을 상징하여 서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연놀이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즐기는 놀이이다. 음력 정월을 중심으로 밖에서 추위를 이기고 바람에 연을 띄우며 놀이를 즐긴다.                                                                연을 하늘 높이 올리는 것도 재미있지만 연싸움이 더욱 재미있다.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연 실에 사기그릇 가루를 풀매겨 실과 실을 부벼 연줄이 끊겨 나가도록 한다. 끊긴 연은 패자가 되어 어디로 인가 정처 없이 바람에 떠 날아가 버린다. 싸움에 살아 남은 연은 하늘을 지배하고 왕자가 된다.       사람들은 연을 띄울 때 '송액영복 (送厄迎福)'이라는 글씨를 써 붙인다. 이것은 질병, 사고, 흉년 나쁜 액운일랑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오도록 비는 마음에서다. 얼레에 감긴 실이 모두 풀려 나가고 연이 하늘 높이 올랐을 때 연줄을 끊어 버린다. 연이 바람에 실려 어디로든지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한다. 제발 나쁜 액운일랑 연과 더불어 멀리 달아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나쁜 액운을 연에 실려 멀리 쫓아내고 희망 찬 새 마음을 갖기 위해 연을 날렸다.

* 연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                                                                                             

삼국사기에 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시대 선덕여왕이 승하하고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웬일인지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 왕을 몰아내려는 역적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별이 떨어진 곳에는 반드시 유혈이 일어난다 하는데 이는 틀림없이 여왕이 패망할 징조다.' 반란군들은 이 소리를 성안이 떠나갈 듯 크게 외쳤다. 소란한 이 소리가 여왕의 귀에까지 들렸다. 여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김유신 장군을 왕에게 말하기를 '길하고 흉하는 것은 무상한 일인데 큰 별이 떨어졌다고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장군은 슬기로 요망한 것을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아무도 몰래 큰 연을 만들었다. 그 연에다가 인형을 만들어 매달고 불을 붙여 밤하늘에 올렸다. 그 불은 마치 별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빛을 발하면서 떠올랐다. 그리고 은밀하게 사람들을 시켜 '어제 밤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떠올랐다.'고 퍼뜨렸다. 그 소문이 장안에 쫙 퍼졌다.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은 금세 사기가 떨어지고 왕의 군사들은 반대로 사기가 충천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렇게 김유신 장군은 연을 이용한 지혜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원절식 [上元節食] 
한국에는 예로부터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장수를 빌어 오곡밥이나 약식을 지어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시며, 새벽에 부럼을 까서 이를 튼튼하게 하고 종기를 예방한다는 풍습이 전한다. 이들 절식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부럼 
대보름날 새벽에 날밤, 호도, 은행, 밤, 잣, 땅콩 등을 깨물면서 "일 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축수하며, 깨무는 '딱'소리에 잡귀가 물러간다고 했으며 부럼 깨무는 풍습을 고치지방(固齒之方:이를 단단히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귀밝이술 
대보름날 아침 웃어른께 데우지 않은 청주를 드시게 하여 귀가 밝아지길 바라며 또한 일 년 내내 좋은 소리 듣기를 기원하였다.
오곡밥
쌀·차조·차수수·팥·콩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는다. 오곡밥은 성이 다른 세 집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수가 좋다고 하여 오곡밥을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으면  좋다고 하며, 또한 이 날에는 하루 9끼를 먹어야 좋다고 한다. 
 진채식(陳菜食)
진채란 묵은 나물을 뜻하는 것으로, 호박고지·박고지·말린가지·말린버섯·고사리·고비·도라지·시래기·고구마순 등 적어도 9가지 나물을 볶아서 먹는다. 진채식을 먹으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팥죽 
대보름 전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기위해 숟가락으로 떠서 끼얹고 제사를 지낸다.
약밥(藥飯,藥食) 
신라 소지왕10년 정월 보름날 까마귀 덕분에 역모를 꾀하던 무리를 처치할 수 있었다 하여 이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검은색을 띤 약밥을 지어 제(祭)도 지내고 까마귀에게 먹이도 주었다.
복쌈
취나물을 볶고 김을 구워 취나물과 김으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다. 쌈을 먹으면 부(富)를 쌈 싸듯이 모을 수 있다는 풍습에서 나온 것이다. 
원소병 (元宵餠) 
찹쌀가루를 반죽해 경단을 만들어서 꿀물에 띄운 음식. 원소는 <정월 보름날 저녁>이라는 뜻이다. 만드는 법은 먼저 찹쌀을 물에 불려 가루로 빻아 체에 걸러서 셋으로 나누어 놓는다. 치자로 노란색 즙, 쑥으로 녹색 즙, 오미자로는 붉은색 즙을 만들어 뜨거운 물에 타서 각각 나누어 놓은 찹쌀가루와 반죽한다. 대추는 씨를 빼고 다져 계핏가루·꿀과 함께 버무리고, 유자는 설탕에 재워 두었다가 다져 소를 만든다. 반죽을 대추알만큼씩 떼어서 둥글게 빚은 다음 소를 넣고 경단을 만들어 녹말가루를 묻힌다. 끓는 물에 넣어 익어서 떠오르면 찬물에 헹구어낸다. 설탕물을 끓여 차게 식혀 두었다가 상에 낼 때 화채그릇에 경단을 담고 잣을 띄운다. 겨울철 전통음식의 하나인 원소병은 정초의 상차림에도 쓰인다.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보름하면 정월 초하루 즉 설을 쇤 후 2주가 지나는 시기다.
이 때쯤이면 농경사회에서 서서히 농사일을 시작할 때가 된다.
즉 설부터 시작된 웃어른께 새배를 드리는 등의 설 풍속을 즐기면서 2주 동안 마지막 겨울을 보낸다. 2주 동안 잘 쉬었으니 새해 농사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새해 농사일의 첫 단계는 파종할 씨앗을 선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옛날 우리 나라에서 경작되었던 대표적인 곡물이 다섯가지였으므로 지난 해 가을 추수하여 창고에 보관중이던 곡식들 중에서 잘 여물고 싹이 잘 틀만한 씨앗을 선별하고 나서는 1년 동안 집안 대소경조사를 위해 곡식들을 가름짓고 나면 곡식들이 조금씩 남게 되었다.
조금씩 남은 이 곡식들을 한 데 모아서 밥을 짓게 되니 맛도 있을 뿐더러 소화도 잘 되는 등 건강에도 좋아 계속 지어먹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조금씩 남은 곡식들을 한 데 모아 밥을 짓는데서 유레한 것이다. 천으로 옷을 만들고 남은 조각들로 색동저고리를 만들었던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하고도 일맥 상통하는 대목이다.
 
또한 나물을 먹었던 것은 대보름이 있는 2월 중순경이면 남쪽에서부터 봄기운이 완연하게 다가오는 때이다. 따라서 지난해에 겨우내 먹기 위해서 말려 두었던 나물을 더이상 창고에 보관하면서 먹을 필요가 없게 되었으므로 모두 꺼내서 나물을 무쳐 먹었던 것이다. 날씨가 풀려 새 나물이 나오는데 굳이 지난 해 나물을 창고에 더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이 또한 오곡밥과 함께 건강에도 좋아 본격적인 농사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때그때의 생활풍습을 반영하는 세시풍속에는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연날리기 대회 중계방송 
 
전국 연날리기 대회를 중계하기 위하여 방송사에서 모든 장비외 인원을 파견했다
해설가와 어나운서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하기 시작.......
그때 바람이 솔솔불어 연이 하늘로 뜨기 시작하니 
사회자왈
연이 하나 뜨니.........한년 떳다
두개뜨니 ..........두년 떳다
세개 뜨니 ...........세년 떳다
 
마침 바람이 솔솔 잘 불어서 여기 저기 한꺼번에 형형색색의 많은 연이 하늘로 날자
사회자는 중계를 할수없어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끝에 한꺼번에 할수있는 말로 바꾸는데
사회자왈
지금 하늘에는 이년 저년 요년 조년 별의별
온갓 잡년이 다 떴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